이상하다는 감정은 그날 이후로 조금씩 나에게 심어지고 있었다.
그때 당시엔 그냥 내가 예민한 건가 하면서 가볍게 넘겼다.
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.
어떤 아이디어를 내면 그 친구는 꼭 이렇게 말했다.
“그건 이미 내가 생각했던 거야.”
“그건 누가 못 하냐?”
내 생각은 늘 한 발 늦었고,
내 노력은 당연한 거였다.
아이디어가 나와도 인정받지 못했고,
무언가를 잘 해도 칭찬은 없었다.
그저 “그래, 이제 시작이야. 할 거 많아.” 같은 말만 돌아왔다.
내 감정은 더더욱 투명하게 취급됐다.
한 번은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,
준비가 부족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더니,
“넌 맨날 그 핑계더라.
그렇게 하니까 안 되는 거야.”
걱정보다는 비난, 조언보다는 무시.
나는 점점 입을 다물었다.
말을 해도 돌아오는 반응이 상처니까,
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.
그리고 그 즈음부터,
나조차도 내 감정을 무시하기 시작했다.
‘어차피 말해도 안 통하니까.’
‘내가 더 단단해져야지.’
‘쟤가 맞는 거겠지.’
이건 단순한 관계 문제가 아니라,
나를 지워가는 과정이었다.
근데 그 와중에도 하나 더 이상했던 게 있었다.
누구보다 디테일을 따지던 친구가,
정작 내 사업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다.
“요즘 뭐 팔고 있어?”
“이번 달엔 얼마야?”
질문은 했지만,
구체적인 내용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.
나는 제품도 정리하고,
상세페이지도 만들고,
플랫폼별 전략도 세우며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는데,
그 친구는 그냥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.
“그래, 그러다 보면 금방 월에 천만원 벌겠네.”
“금방 은퇴하겠는데? 이게 다 내 덕이지?”
매주 같이 걸어 다니면서 수많은 대화를 했었다.
그땐 진심이라고 믿었고,
따뜻한 응원이라 생각했지만
지금 돌이켜보면 전부 ‘희망고문’이었다.
현실과는 거리 먼 말들.
내 상황은 보지 않고,
자기만족 섞인 공허한 조언들.
그리고 그런 말들이 쌓이면서,
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속이기 시작했다.
‘내가 좀만 더 잘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 거야.’
‘이 관계는 나를 위한 거니까, 지금은 참자.’
하지만 아니었다.
그 관계는 내 감정을 무시하고,
내 존재를 투명하게 만든 채,
나를 착취하고 있었다.
이상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조금씩 선명해졌다.
그건 착각이 아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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